| 네레이스(Nerei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님프이다. 이 님프에게는 자매들이 무려 50명(혹은 100명이라고도 전한다)이나 있었는데, 이들을 통칭하여 네레이데스(Nereides)라고 부른다. 바다의 님프들인 만큼 혈통 역시 물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아버지는 해신(海神) 네레우스(Nereus)이며 어머니는 대양(大洋)의 신 오케아노스(Oceanus)의 딸 도리스(Doris)이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Homeros)가 '바다의 노인'이라 칭한 네레우스는 성품이 온화하고 현명한데다 예언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도리스는 '베푸는 여자'라는 뜻이었다. 이러한 부모의 기질은 딸들에게도 이어져 신화에서 네레이데스는 주로 뱃사공들의 길라잡이가 되거나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영웅들을 도와주는 역할로 등장한다. |
| 신화 속 조연, 바다의 님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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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예술에 묘사된 네레이데스는 대체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젊은 여인들이다. 바다 깊은 곳 동굴에 산다고 알려진 이들은 작은 돌고래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물고기나 해마, 또는 바다 괴물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때로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인 트리톤(Triton)과 함께 묘사되어 포세이돈의 수행원으로서의 임무를 맡기도 한다. 이처럼 신화 속 일화에서 네레이데스가 단독으로 주목을 받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이들의 존재로 인해 신화적 구성과 예술 작품의 시각적 효과는 더욱 풍부해진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괴물 메두사(Medusa)의 목을 벤 영웅 페르세우스(Perseus)가 안드로메다(Andromeda)를 구출하는 일화에서 네레이데스는 사건의 극적인 전개에 있어 핵심 역할을 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이디오피아의 왕비 카시오페이아(Kassiopeia)는 자신의 미모가 바다의 님프들보다 더 낫다고 뽐내곤 했다. 보다 못한 포세이돈과 네레이데스는 오만한 왕비를 응징하고자 바다 괴물을 보내 왕국을 초토화시키고, 결국 왕은 안드로메다(Andromeda) 공주를 바다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을 받게 된다. 이 일화는 미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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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페티, [남자의 시체를 들고 있는 네레이데스], 17세기경캔버스에 유채, 77x67cm, 퐁텐블로성 소장 |
작자미상, [아킬레스의 투구를 들고 있는 네레이드], BC 3세기구운 진흙, 높이 27.5cm, 폭 41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
|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테오도르 샤세리오(Théodore Chassériau)가 그린 이 장면을 보자. 1841년 살롱전에 출품한 이 작품에서 화가는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에 집중되었던 기존의 관심을 네레이데스에게 할애함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5명의 바다 님프들은 가혹하고 냉정한 시선과 동시에 측은함을 드러내며 안드로메다를 결박하고 있다. 작품의 구성에서 그녀들의 표정과 행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사건의 긴장감 또한 고조된다.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미술가들은 신화 속 일화보다는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여체 자체를 묘사하는 데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다. 영국 왕립 아카데미 출신의 화가 에드워드 포인터(Edward John Poynter)의 작품에 묘사된 네레이데스 역시 그러한 예에 속한다. |
1 테오도르 샤세리오, [네레이데스에 의해 바위에 묶인 안드로메다], 19세기경캔버스에 유채, 92 x 74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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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드워드 포인터, [바다 폭풍 님프들의 동굴], 1903년캔버스에 유채, 145.9x110.4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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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세이돈의 아내가 된 암피트리테 |
| 단편적이지만 신화 속 일화를 통해 개별적으로 주목 받은 네레이스로는 암피트리테(Amphitrite)와 테티스(Thetis), 그리고 갈라테이아(Galatea)를 들 수 있다. 헤시오도스(Hesiodos)의 『신통기』에 따르면 암피트리테는 50명의 네레이데스 중 한 명으로 포세이돈과의 사이에서 트리톤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러 판본을 통해 전해지는 일화는 대체로 포세이돈이 그녀를 납치해 아내로 삼은 내용에 관한 것이다. 포세이돈은 바다에서 춤추고 있는 암피트리테에게 반해 구애했으나 그녀가 이를 거절하고 몸을 숨기자 돌고래를 보내 찾아 오게 했다. 이후 돌고래는 포세이돈으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하늘에 올려져 별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
1 마뷔즈,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 1516년패널에 유채, 124x188cm, 베를린 국립회화관 소장 |
2 세바스티아노 리치, [넵튠과 암피트리테], 1691-94년캔버스에 유채, 94x75cm, 티센-보르네미차 박물관 소장 |
| 영웅 아킬레우스를 낳은 테티스 |
| 일설에는 포세이돈이 암피트리테 이전에 좋아했던 님프가 테티스였다고 전하기도 한다. 테티스는 포세이돈과 제우스(Zeus)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는데, 그녀가 낳는 아들이 그 아버지를 능가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두 신 모두 화들짝 놀라 포기해버렸다는 것이다. 포세이돈은 다른 상대(암피트리테)를 찾아갔고 제우스는 아예 그녀를 테살리아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Peleus)에게 시집보내 버렸다. 제우스가 성대하게 베풀어준 결혼식에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를 제외한 모든 신들이 초대받아 참석했다고 하며, 이렇게 부부로 엮어진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us)이다. |
바르톨로메오 디 지오반니,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 17세기경패널에 유채, 42x105cm, 루브르박물관 소장 |
| 폴리페모스의 사랑을 거절한 갈라테이아 |
| 네레이데스 중 가장 유명한 이가 아마도 갈라테이아일 것이다. 그녀는 목신 판(Pan)의 아들 아키스(Acis)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한 이가 또 있었으니, 바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Cyclopes) 중의 하나인 폴리페모스(Polyphemos)였다. 전하는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피리를 불며 혼자만의 연심을 달래고 있던 폴리페모스의 눈에 알콩달콩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갈라테이아와 아키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 폴리페모스는 두 연인을 향해 커다란 바위를 집어던졌고 아키스는 이에 깔려 죽고 만다. |
1 라파엘, [갈라테이아], 1511년프레스코화, 225x295cm, 빌라 파르네시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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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제 뤼카, [외눈 거인 폴리페모스를 보고 놀라는 아키스와 갈라테이아], 18세기경캔버스에 유채, 119x84.5cm, 베르사이유와 트리아농궁 소장 |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네레이데스에 대해 "나무랄 데 없는 네레우스에게서 태어난 쉰 명의 딸"이라고 그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술가들은 이러한 네레이데스를 부각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아마도 여신에 버금가는 능력으로, 또한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신화 속에서 주연 못지않은 비중 있는 조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던 것이리라.
- 글
- 이민수 | 미술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인간, 사회 그리고 미술의 상호 관계와 이 세가지가 조우하는 특정 순간을 탐구하는 데에서 미술사학의 무한한 매력을 느낀다. 보다 가까운 미술사, 소통하는 미술사에 대해 고민하며 집필 및 강의 활동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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